남두: 소협께서 강호의 내력을 알고 싶으신 거군요. 좋아요, 운명의 길을 걷기 전에 그 길이 어떻게 놓여졌는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니까요. 먼저… 가장 깊은 뿌리부터 말씀드릴게요. 지금으로부터 오백여 년 전, 북송(北宋) 초기에 명교(明敎)라는 불문(佛門) 집단이 생겨났었어요. 광명을 숭배하고, 어둠을 물리치는 것을 교리로 삼은… 본래는 순수한 믿음의 집단이었답니다. 오백 년이라는 세월 동안 중원 곳곳에 뿌리를 내렸고, 백성들 사이에서도 적잖은 신망을 얻었지요.
북두: 순수하다고? 흥. 순수했으니까 문제였지. 백여 년 전으로 가자. 원말(元末)의 난세. 천하가 뒤집어지고 영웅호걸들이 들끓던 시절이야. 그 한복판에 주원장(朱元璋)이라는 자가 있었다. 후에 홍무제(洪武帝)가 되는 놈이지. 주원장이 천하를 도모할 때, 명교가 거들었다. 교도들이 군사가 되고, 교주의 인맥이 보급선이 되고, 명교의 명분이 백성의 지지가 되었지. 그래서 나라 이름도 '명(明)'이야. 명교의 '명'을 따온 거다.
남두: …네. 명교의 헌신이 없었다면, 명나라의 건국은 훨씬 험난했을 거예요. 하지만… 홍무제는 천하를 통일한 뒤, 자신을 도운 명교를 숙청했어요.
북두: 토사구팽(兎死狗烹).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를 삶는 법이지. 주원장이란 놈은 그 점에서는 참 철저했다.
남두: 숙청 이후, 명교는 두 파로 나뉘었어요. 하나는 기존의 교리를 따르며 광명의 도를 이어가려 한 일월신교. 또 하나는… 교리를 버리고 오직 힘만을 숭배하게 된 천마신교.
북두: 일월신교는 그래도 체면치레라도 하지. 광명이니 구원이니 하는 소리를 아직도 늘어놓으니까. 천마신교는 아예 가면을 벗었다. 힘이 곧 도(道)라고. 그쪽이 차라리 솔직해서 마음에 들긴 하지만.
남두: 어르신…! 크흠, 흠. 현재 일월신교는 6대 명존(明尊)이 이끌고 있고, 천마신교는 2대 천마(天魔)가 다스리고 있어요. 두 세력 모두 각자의 이유로 중원을 침공하고 있고… 강호에서는 절대악으로 낙인찍혀 있지요. 허나 명교 대숙청의 여파는 그것만이 아니었어요. 중원 무림 전체에 황실에 대한 불신이 퍼졌거든요. '황실이 괜히 명교를 토사구팽해서, 멀쩡한 불문 집단이 사교의 무리로 타락하지 않았느냐'… 그것이 무림인들의 명분이었지요.
북두: 명분이라. 틀린 말도 아니야. 주원장이 씨를 뿌렸으니까. 주원장도 바보는 아니었다. 무림의 불신이 커지는 걸 의식하고, 친황실파를 양성하기 시작했지. 무당파, 소림사, 하북팽가. 이 세 곳에 막대한 지원을 쏟아부었다.
남두: 황실의 방패막이를 만든 것이지요. 관(官)과 무림(武林) 사이의 완충지대를 형성하려 한 거예요.
북두: 그런데 그것도 결국은 한계가 왔다. 홍무제 통치 말년. 관청과 무림의 불신이 극에 달해서 대충돌이 일어났다. 양쪽 다 수많은 사상자가 났지. 그때 소림사, 남궁세가, 무당파가 필두로 나서서 중재했고… 그 결과로 관무불가침(官武不可侵)이 형성되었다.
남두: 관(官)은 무림에 간섭하지 않고, 무림도 관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약조예요. 이 약조가 있기에 지금의 강호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지요. 관청의 법과 힘이 닿지 않는 곳, 무공과 신의로 생존과 명예가 결정되는 세계… 그것이 바로 강호(江湖)랍니다. 그리고…
북두: 이십 년 전의 일이지. 정혈전쟁(正血戰爭). 이건 좀 심각한 이야기다. 술 한 잔 더 따라라, 남두.
남두: 이십 년 전, 영락제(永樂帝)가 정난의 변(靖難之變)을 일으켜 조카인 건문제를 몰아내고 황위를 찬탈했어요. 천하가 어수선해진 그 틈을 타서… 혈교(血敎)가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답니다.
북두: 혈교. 피를 숭배하는 미친 놈들이지. 그놈들이 영락제의 찬탈로 관군이 혼란에 빠진 사이,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정변 직후의 혼란스러운 정세 때문에 관군은 혈교의 반란에 제때 대응하지 못했고, 그 혈교의 광기를 막을 수 있는 건 오직 무림 자체뿐이었다.
남두: 그래서 정파(正派)가 무림맹(武林盟)을 결성했어요. 무림대회를 열어 우승자를 무림맹주로 선출하고, 혈교에 대항했지요.
북두: 무림맹 결성이 이때가 처음은 아니야. 역사적으로 여섯 번째다. 첫째, 영가(永嘉)의 난 시기. 둘째, 안사(安史)의 난. 셋째, 요나라의 연운 16주 남하. 넷째, 악비(岳飛)의 금나라 정벌. 다섯째, 송원전쟁(宋元戰爭). 그리고 여섯째가 지금이다. 무림이 존망의 위기에 처할 때마다 뭉치는 거지. 물론, 위기가 지나면 또 흩어지지만.
남두: 정혈전쟁의 결과는… 정파의 승리였어요. 하지만 승리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큰 대가를 치렀답니다. 많은 고수들이 쓰러졌어요. 장로들, 후기지수들… 다음 세대를 이끌어야 할 젊은 인재들까지. 정파는 승리했지만, 뼈와 살이 함께 잘려나간 것이나 다름없었지요.
북두: 전대(前代) 무림맹주는 고운문(高雲門) 문주 두백(杜伯)이라는 자였다. 쓸 만한 놈이었지. 하지만 정혈전쟁 이후의 정파 행태에 염증을 느꼈다.
남두: 전쟁이 끝나자마자 정파 내부에서 권력 다툼이 시작되었거든요. 출혈을 복구한다는 명목 아래, 실은 각 문파가 자기 세력을 키우기 위한 암투와 대립이 끊이질 않았어요.
북두: 영락제 놈도 문제였다. 정혈대전 때 무림을 방관해 놓고, 전쟁이 끝나자마자 황권 강화에 나섰거든. 관료를 대규모로 숙청하고, 금의위(錦衣衛)와 동창(東廠)의 권력을 키워 무림을 견제했다. 두백은 그 두 꼬락서니를 보다 못해 은둔해 버렸다. 세간에는 정혈대전 직후 행방불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 그래서 지금 무림맹주 자리는 공석이야. 현재 무림맹은 남궁세가(南宮世家)와 소림사(少林寺)를 필두로 겨우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내부 잡음이 심해. 파벌이 나뉘어 있거든.
남두: 온건파는 하북팽가, 무당파, 소림사, 아미파, 곤륜파예요. 대화와 화합을 우선하는 쪽이지요. 강경파는 남궁세가, 화산파, 공동파, 형산파. 힘으로 사파를 제압해야 한다는 입장이에요.
북두: 그리고 모용세가(慕容世家)라는 기회주의 놈들이 있다.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는 갈대 같은 놈들이지. 나머지는 중립이고.
남두: 정혈대전 이후, 사파(邪派) 쪽에서도 큰 움직임이 있었어요. 사도련(邪道聯)이라는 사파 연합이 본격적으로 대두되었지요. 상관세가, 우문세가, 사마세가를 필두로, 사파들이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어요.
북두: 사파가 뭉치면 무섭지. 문제는 그놈들이 뭉칠 때가 '정파가 약해졌을 때'라는 거다. 지금이 딱 그 시기야.
남두: 그리고 현재의 황제… 선덕제(宣德帝) 주첨기(朱瞻基) 폐하의 이야기도 해드려야겠지요.
북두: 이놈은 좀 다르다. 할아버지 영락제, 증조부 홍무제와는 달리 온건한 성향이야. 주첨기는 무림을 무력으로 제압하려 하지 않아. 후한의 광무제나 송태조의 배주석병권(杯酒釋兵權)처럼, 무림이 자발적으로 고개를 숙이게 만들고 싶어하는 놈이지. 한잔 술로 칼을 거두게 만드는 방식이랄까.
남두: 하지만 주첨기 폐하에게도 걱정거리가 있어요. 홍무제와 영락제가 즉위 과정에서 무림과 벌인 잡음… 그리고 무엇보다, 숙부인 한왕(漢王) 주고후(朱高煦)의 불온한 움직임이 있거든요.
북두: 주고후. 그 놈은 야심이 하늘을 찌르지. 황위를 노리고 있어. 주첨기로서는 무림을 견제하면서도 숙부를 경계해야 하는 이중 부담이야. 그러니까 강호는 한 마디로? 사방이 화약고라는 말이다. 정파도 뒤끝이 있고, 사파도 칼을 갈고 있고, 황실도 무림을 탐내고, 마교는 복수에 미쳐 있다. 그 한가운데에 네놈이 던져지는 거야. 재미있지 않나, 애송이?